お電話でのご予約・お問い合わせは0837-25-3611

오우치(大内) 일족의 묘소를 지키고 있는 유모토(湯本) 온천

오우치(大内) 일족의 묘소를 지키고 있는 유모토(湯本) 온천


半島出身の名族

한반도 출신의 명문

 大内一族のお墓をお守りしている湯本温泉

오우치(大内) 일족의 묘소를 지키고 있는 유모토(湯本) 온천

7세기, 백제왕국이 당나라의 침입군에 의하여 멸망되자 왕족의 일부는 일본으로 망명하였습니다. 백제 왕의 셋째 왕자 임성(琳聖)태자는 야마구치(山口) 현의 다타라하마 해변에 상륙하여 야마토 조정에서‘다타라(多々良)’라는 성과 주변의 황실 영지인‘오우치 아가타’를 하사받았습니다.

한반도의 왕족으로 일본의 다이묘가 된 가문은 유일하게 이 오우치 씨 뿐입니다. 그 후 오우치 씨는 서일본에서 서서히 세력을 확장시켰습니다. 그 전성기(15~16세기) 에는 조선, 중국 명나라와의 무역을 독점하였으며, 주고쿠 지방 전역과 규슈 북부를 영유하는 명실상부한 일본 최대의 지방 영주가 되었습니다.

오우치 씨는 본거지인 야마구치를 교토와 같은‘미야코(수도)’로 만들고 싶어 역대로 전력을 다해서 어느덧 야마구치는‘서쪽의 교토’라고 불리워지기 시작했으며 ‘오우치 문화’가 번영하였습니다.

1551년 가을, 오우치 가문의 최후의 영주가 된 오우치 요시타카(大内義隆)는 생각치도 못했던 가신의 반역에 의해 나가토유모토(長門湯本)의 다이네이지(大寧寺) 절로 몰리게 되어 결국 자해하고 말았습니다. 이 쿠데타로 인하여 오우치 가문은 역사의 무대에서 모습을 감추게 되었습니다.

유모토 온천마을은 이 다이네이지 절과 깊은 인연으로 맺어졌습니다. 1427년 한 주지스님이 온천 개발에 성공한 이래 600년의 역사를 쌓아오고 있는 휴식처의 온천지입니다. 저희들은 다이네이지 절 경내에 잠들어 계시는 한반도 출신의 귀족 오우치 일족의 분묘를 500여년에 걸쳐 모시고 있습니다.

 

 

여러분, 일본에 여행하실 기회가 있으시면 꼭 한 번 고풍스러운 유모토 온천마을을 방문하시어, 고즈넉히 자리한 오우치 가문의 분묘에 위령의 두 손을 모아주시기를 바랍니다!

 

 

日本語原文 : 大寧寺方丈 筆

半島出身の名族

大内一族のお墓をお守りしている湯本温泉

7世紀、百済(くだら)王族が唐の侵入軍によって滅ぼされると王族の一部は日本へ亡命しました。百済王の第三王子 琳(りん)聖(しょう)太子(たいし)は山口県の多々良ケ浜(たたらがはま)に上陸し、大和朝廷から「多々良(たたら)」姓と周辺の「大内県(おおうちあがた)」を賜りました。

朝鮮半島の王族で日本の大名になったのは唯一この大内氏だけです。その後、大内氏は西日本で徐々に勢力を拡大しました。その全盛期(15~16世紀)には半島(朝鮮)貿易や対明(みん)(中国)貿易を独占するに至り、中国地方全域と九州北部を領有する名実ともに日本最大の地方大名となりました。
大内氏は、本拠の山口市を京都のような「都(みやこ)」にしようと歴代全力を傾けたので、いつしかこの街は「西の京」と呼ばれるようになり「大内文化」が繁栄しました。

1551年の秋、大内家最後の王となった大内(おおうち)義(よし)隆(たか)は、思いもかけぬ家臣の謀反によって長門湯本の大寧寺(たいねいじ)に追い詰められ、切腹をしました。このクーデターにより大内家は歴史の舞台から姿を消したのです。
私たちの湯本温泉郷は、この大寧寺と深い因縁で結ばれてきました。1427年に時の住職が温泉開発に成功して以来、600年の歴史を積み重ねている古い憩いの温泉なのです。私たちは、大寧寺の境内に眠っている半島出身の貴族大内一族の墳墓を500年近くにわたって守り続けています。
日本に旅行する機会があったら、ぜひ、奥ゆかしい湯本温泉の宿を訪れ、古(いにしえ)の大内一族の墳墓に慰霊の手を合わせられますよう、お誘い申し上げます。





このページの上へ